Stand Firm (믿음에 굳게 서라)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참 많은 어려운 일을 만납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것 가운데 하나는 마음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상황이 어려운 것도 힘들지만, 사실 더 힘든 것은 그 상황 때문에 내 마음까지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멘탈이 강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글이 있습니다. “멘탈이 강하다는 것은 아프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아파도 해야 할 일을 하고, 두려워도 한 걸음 내딛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힘이 있다는 뜻이다.”
참 의미 있는 말입니다. 강한 사람이라고 해서 아프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두렵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실패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아파도 다시 일어서고, 두려워도 앞으로 나아가고, 넘어져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나무도 그렇습니다. 바람이 세게 분다고 모든 나무가 쓰러지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바람을 맞아도 어떤 나무는 쓰러지고 어떤 나무는 견딥니다. 차이는 어디에 있습니까? 뿌리입니다.
겉으로 얼마나 크고 화려한가보다 땅속에 얼마나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조건도 중요하지만,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결국 나를 붙들어 주는 것은 내 안에 무엇이 뿌리내리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에는 모두 믿음이 좋아 보일 수 있습니다. 아무 일 없을 때는 누구나 평안해 보입니다. 그러나 시험이 찾아오고, 내 뜻대로 되지 않고, 기도한 것과 다른 결과를 만났을 때 비로소 내가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는지가 드러납니다. 믿음의 기초가 약하면 작은 시험에도 쉽게 흔들립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 깊이 뿌리내린 사람은 어려움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강인함이 무엇인지를 발견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강함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믿음에 서 있는 것입니다. 눈앞의 상황이 녹록지 않고, 현실이 나를 흔들고, 내 마음도 흔들릴 때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자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 그것을 우리는 믿음의 강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고린도교회는 은사가 풍성한 교회였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는 분열과 다툼이 있었고, 세속적인 가치관이 들어와 있었으며, 신앙적으로도 적지 않은 혼란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전체를 통해 그 문제들을 하나하나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긴 편지를 거의 마무리하면서 아주 짧지만 강력한 명령을 남깁니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이 말씀은 단순히 당시 고린도교회만을 위한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 흔들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믿음에 굳게 설 수 있을까요?
1. 깨어 있는 사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바울은 가장 먼저 말씀합니다. “깨어 있으라.”
여기서 깨어 있다는 것은 잠을 자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영적으로 민감한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살아 있고, 말씀과 기도로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살피는 태도입니다.
사람은 방심할 때 가장 쉽게 넘어집니다. 유혹도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대부분 마음이 무뎌지는 데서 시작됩니다. 기도가 조금씩 줄어듭니다. 말씀을 멀리하기 시작합니다. 예배가 형식이 됩니다. 하나님께 묻기보다 내 생각을 먼저 믿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일어납니다. 그래서 더 위험합니다.
운전을 오래 하다 보면 졸음운전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게 됩니다. 졸음운전이 위험한 것은 운전자가 일부러 사고를 내려고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감각이 무뎌지기 때문입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영적으로 잠든 사람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가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바쁜 일정 속에서 하나님을 위한 시간은 자꾸 뒤로 밀립니다. 스마트폰 화면은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들여다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며칠씩 펼쳐 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는 계속 듣는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은 점점 줄어듭니다.
그렇게 영적인 감각이 무뎌지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부터 문제보다 하나님이 작아 보이기 시작합니다. 상황은 점점 크게 보이고 하나님은 점점 멀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바울은 먼저 말합니다. “깨어 있으라.”
깨어 있는 삶은 특별한 사람만 살아가는 대단한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아침에 하루를 시작하면서 하나님께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하나님, 오늘도 제 생각대로만 살지 않게 해 주십시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먼저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무엇을 원하는가보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알게 해 주십시오.”
말씀 앞에서 내 생각과 행동을 점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깨어 있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깨어 있는 사람에게 분별력을 주십니다.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무엇을 멀리해야 하는지,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보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분별력으로 순간순간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에 굳게 서기 위해서는 먼저 깨어 있어야 합니다.
2. 믿음에 굳게 서는 사람은 상황보다 하나님을 붙듭니다
바울은 이어서 말씀합니다. “믿음에 굳게 서라.”
우리는 때때로 긍정적인 생각이나 낙관적인 마음을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잘될 거야.” “좋아질 거야.” “이번에는 반드시 될 거야.”
물론 긍정적인 마음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그것보다 훨씬 깊습니다. 믿음은 상황이 좋아질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다양한 문제를 겪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모든 문제를 없애는 비결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먼저 하나님 안에 굳게 서라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환경은 변하지만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만납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더디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기대와 다를 때도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기도했는데 원하는 대학에 떨어질 수 있습니다. 성실하게 준비했는데 취업이 늦어질 수도 있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는데 내가 기대했던 길이 쉽게 열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신앙적 회의감입니다. “하나님, 왜 저입니까?” “하나님, 제가 이렇게 기도했는데 왜 안 됩니까?” “하나님, 정말 저와 함께하고 계십니까?”
그런데 바로 그때 필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그 때를 위해서 믿음을 굳게 해야 합니다.
믿음은 모든 일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풀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여전히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지금 이 상황도 하나님의 손 밖에 있지 않다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요셉의 삶이 그렇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 꿈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꿈을 받은 다음부터 모든 일이 잘 풀려야 할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정반대였습니다.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고, 구덩이에 던져졌고, 노예로 팔렸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요셉의 눈앞에 보이는 현실만 보면 하나님의 약속과 점점 멀어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돌아보니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그 모든 시간을 통해 요셉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지금의 한 장면만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체 이야기를 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일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나무는 바람이 없을 때만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바람을 견디는 과정에서 뿌리가 더 깊어집니다. 믿음도 그렇습니다. 시험 자체가 반드시 믿음을 무너뜨리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시험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 우리의 믿음이 더 깊어지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문제의 크기가 아닙니다. 내가 지금 누구를 붙들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이번 한 주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계획한 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흔들리는 상황 위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 위에 서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특별히 지금 우리 청년부가 수련회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번 수련회의 주제가 바로 “믿음에 굳게 서라”입니다. 이것이 우리 청년들에게 얼마나 필요한 말씀인지 모릅니다.
녹록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입시에 부딪칩니다. 학업에 부딪칩니다. 취업의 문 앞에 섭니다. 직장에 들어가면 또 사람과 부딪칩니다. 윗사람과의 관계가 있고 아랫사람과의 관계가 있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인생과 실제 살아가는 인생 사이의 차이와도 부딪칩니다.
그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그럴수록 믿음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다른 무엇보다 그 믿음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그 믿음이 우리의 삶을 더욱 담대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3. 이 강건함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데서 나옵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말씀합니다. “남자답게 강건하라.”
여기서 “남자답게”라는 표현은 성별을 구분하여 남성만 강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믿음 안에서 용기를 가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담대하게 서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강함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설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골리앗과 다윗을 인간적인 조건으로 비교하면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체격도, 무기도, 전쟁 경험도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윗에게는 골리앗이 보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입니다.
다윗이 강했던 이유는 자기가 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강하시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용기도 바로 이런 용기입니다. 입시 앞에서 담대하게 서는 용기, 학업에 담대하게 임하는 용기, 취업의 문 앞에서 낙심하지 않는 용기,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용기, 그리고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용기입니다.
이런 것들은 말로는 쉽습니다. 그러나 막상 우리의 현실이 되면 쉽지 않습니다. 그 시기에는 입시가 인생의 전부처럼 느껴집니다. 취업이 인생의 전부처럼 느껴집니다. 직장에서의 평가 하나가 내 인생 전체의 가치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황하고 두려워합니다. 마음먹는 것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강해져야지.” “흔들리지 말아야지.” 결심한다고 언제나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성령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스가랴 4장 6절 말씀입니다.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홀로 싸우게 하지 않으십니다. 말씀으로 우리를 붙드시고, 기도로 새 힘을 주시고, 공동체를 통해 서로를 세워 주십니다.
특별히 청년의 때에는 친구라는 존재가 참 중요합니다. 자신의 목표를 향해 혼자 열심히 달려가다가도 지치고 힘들 때 친구 한 사람의 말이 큰 위로가 됩니다.
믿음의 공동체는 더 그렇습니다. 세상에서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편안함과 기쁨이 있습니다. 함께 예배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웃고, 함께 울면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혼자 믿게 하지 않으시고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함께 믿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대학에 붙기 위해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취업하기 위해 예수를 믿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세운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믿음 위에 굳게 선다는 것은 내 목표를 이루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내 꿈만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 제 인생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성장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내 꿈을 이루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자라면서 우리의 기도가 달라집니다.
“하나님, 제가 원하는 것을 주십시오”에서 “하나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제가 원하게 해 주십시오”로 바뀝니다.
이것이 믿음에 굳게 서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붙드시겠습니까?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의 자리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 청년들과 모든 성도들이 이러한 믿음 위에 굳게 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고린도전서 마지막 부분에서 바울은 복잡했던 고린도교회의 문제들을 정리하면서 짧고 강력한 말씀을 남깁니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시대가 달라져도 이 말씀은 여전히 우리의 삶을 붙드는 기준이 됩니다.
세상은 계속 변합니다. 가치관도 변합니다. 사람의 마음도 변합니다. 어제 옳다고 하던 것을 오늘 틀렸다고 하고, 오늘 옳다고 하는 것을 내일은 또 다르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분이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이 그분 위에 세워질 때 우리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번 한 주를 시작하면서 우리 자신에게 질문해 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무엇을 가장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내 마음은 영적으로 깨어 있는가? 어려움을 만났을 때에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가?
믿음에 굳게 선다는 것은 반드시 거창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말씀 앞에 서는 것입니다. 기도로 하나님께 내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있는 삶의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한 걸음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욱 견고하게 세워 가실 것입니다.
처음에 나무 이야기를 했습니다. 바람이 세다고 모든 나무가 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이 불어도 견딥니다.
어쩌면 우리의 기도는 늘 이럴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바람이 불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때로 바람을 없애시는 대신 바람을 견딜 수 있도록 우리의 뿌리를 더 깊게 하십니다. 문제가 없는 인생을 만들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문제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믿음의 사람으로 우리를 만들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청년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청소년들과 어린이부, 영유아부의 다음 세대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앞으로 이들이 살아갈 세상에는 지금보다 더 다양한 가치관과 신념과 온갖 사상들이 끊임없이 다가올 것입니다.
세상은 계속해서 질문할 것입니다. “왜 꼭 그렇게 믿어야 하는가?” “왜 성경이 기준이어야 하는가?” “왜 예수 그리스도여야 하는가?”
그때 필요한 것은 세상으로부터 도망가는 믿음이 아닙니다. 세상 한가운데서도 믿음에 굳게 서는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그럴 때일수록 더욱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성령을 의지해야 합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에 굳게 서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평안을 주시고,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지 분별할 수 있는 지혜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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