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믿음도 붙드시는 주님의 은혜

 본문 : 마가복음 9:14-29


들어가는 말


목회데이터연구소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 할수록 '자신의 믿음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왜일까 생각해 보면, 나이가 들어갈수록 세상에 대해 조금씩 더 알아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만큼 믿음이 자라기보다, 세상에 대해 알게 되면서 눈에 보이는 현실이 그만큼 더 크게 보이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 6:3)고 말씀했는지 모릅니다. 세상을 알아가는 것보다 더 빠르게, 더 깊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우리의 힘이라고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만 생각하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언제 믿음을 키우고, 또 얼마나 하나님을 알아야 이 세상을 이길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조금 다른 각도의 믿음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 앞에 나온 한 아버지는 믿음이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말씀은 믿음이 큰 사람만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믿음이 부족하지만 어떻게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1.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입니다.

한 아버지가 예수님께 아들을 데리고 나옵니다. 그 아이는 어릴 때부터 귀신에게 심하게 고통을 당했습니다. 귀신은 아이를 불에도 넘어뜨리고 물에도 넘어뜨렸습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방법을 찾아보았겠습니까. 좋다는 것은 다 해보았을 것입니다.
마지막 희망을 품고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예수님은 산에 올라가 계셨고 제자들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도 제자들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희망을 품고 왔다가 또다시 절망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말은 예수님의 능력을 의심해서 나온 말이라기보다 너무 많이 지친 사람의 말입니다. 기대하고 싶지만 또 실망할까 두렵고, 믿고 싶지만 상처받는 것이 무서운 사람의 고백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오랫동안 기도했지만 응답이 되지 않고, 같은 문제를 놓고 몇 년째 기도하는 분도 있습니다. 병상에서 가족을 위해 기도하지만 병이 낫지 않고, 자녀를 위해 기도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근심만 쌓여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도하는 것을 포기할 수 없지요,
그래서 입술로는 "주님을 믿습니다."라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이번에도 안 되면 어떡하지." 하는 불신의 마음이 항상 같이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영적인 싸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아버지가 예수님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완전해서도 아니고, 확신이 넘쳐서도 아니었습니다. 의심이 있었지만 예수님께 왔고, 두려움이 있었지만 예수님 앞에 섰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잘 보면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 상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었을 때 아브라함도 흔들렸고, 모세도 흔들렸고, 야곱도, 다윗도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흔들리는 마음을 가지고도 하나님께 나아왔다는 것입니다.

2. 주님은 우리의 부족한 믿음을 책망하기보다, 그 믿음을 주님께 맡기도록 이끄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능력을 증명하려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두려움을 밖으로 끌어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도 가운데 하나가 나옵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참 놀라운 기도입니다.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믿음이 없다고 말합니다. 모순처럼 들리지만 사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걱정도 합니다. 주님을 신뢰한다고 고백하면서도 밤이 되면 불안해서 잠이 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은혜를 받고 예배당을 나서지만 현실의 과제를 다시 짊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믿음과 두려움은 우리 안에서 늘 함께 움직이는데, 그런 우리의 마음을 너무도 잘 대변해 주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이 아버지에게 "그 정도 믿음으로는 안 된다.", "믿음이 더 커지면 다시 오너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부족한 믿음을 가지고 나온 사람을 품으시고 그의 아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왜일까요.
주님은 완벽한 믿음을 찾으시는 분이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오는 사람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자랑하는 사람보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사람을 주님은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제자들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읽을 때 자연스럽게 아버지에게만 시선이 갑니다. 그러나 마가는 제자들도 함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건은 단순히 한 아이가 고침받은 이야기가 아니라, 제자들이 왜 실패했는지를 보여 주는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제자들은 이미 귀신을 쫓아낸 경험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권능을 주셨고, 실제로 많은 귀신을 쫓아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실패합니다.
왜 실패했을까요.
본문 마지막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예수님은 단순히 기도의 시간을 늘리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제자들은 이전의 경험을 의지했는지도 모릅니다.
'예전에도 했으니까 이번에도 되겠지.'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다 했던 사람들이야, 다시 한번 화이팅!’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는 어제의 경험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습니까.
제자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의지하다가 실패했고, 아버지는 작은 믿음뿐이었지만 예수님을 의지했습니다.
제자들은 능력이 있었지만 기도하지 않았고, 아버지는 능력은 없었지만 예수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결국 기적은 누구에게 일어났습니까.
자신을 의지한 사람에게가 아니라, 예수님을 의지한 사람에게 일어났습니다.
저는 이것이 오늘 본문의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스스로 강한 사람 아닙니다.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알고 주님을 붙드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나는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 저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저를 도와주십시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믿음을 주님은 귀하게 여기십니다.

3. 우리를 붙드는 것은 믿음의 크기가 아니라 예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본문을 다시 보면 결국 기적을 일으키신 분은 아버지가 아닙니다. 제자들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아버지의 믿음은 완전하지 않았고 제자들의 믿음도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자꾸 자기 믿음을 들여다봅니다. '내 믿음이 충분한가.', '내가 더 확신해야 하는 것 아닐까.', '내가 더 잘 믿었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시선을 믿음 자체에서 예수님께로 옮겨 놓습니다. 믿음은 크기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붙들고 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어린아이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길을 걸어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이는 손에 힘이 약합니다. 언제든 놓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안전하게 하는 것은 아이의 손힘이 아닙니다. 끝까지 아이를 붙들고 있는 아버지의 손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붙드는 힘보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붙드시는 은혜가 훨씬 더 큽니다. 그래서 작은 믿음도 소망이 있습니다. 믿음이 커서가 아니라 그 믿음이 붙들고 있는 예수님이 크시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구원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큰 믿음을 가져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우리가 하나님을 찾기도 전에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소망은 믿음의 크기에 있지 않고 십자가에서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맺는말

오늘 본문에는 믿음이 위대한 사람이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눈물 흘리는 한 아버지가 나옵니다. 그는 자신의 믿음을 자랑하지 않았고 부족한 믿음을 숨기지도 않았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예수님께 나왔고, 예수님은 그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오늘 우리의 기도가 "주님, 저는 잘 믿지 못하겠습니다.", "주님, 믿고 싶은데 자꾸 흔들립니다."라는 고백이라면 그 기도를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그 기도를 가지고 주님께 나오십시오. 주님은 믿음이 완성된 사람만 기다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연약한 믿음을 붙드시고 자라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믿음은 겨자씨만 할 수도 있습니다. 바람이 불면 흔들릴 만큼 연약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다면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믿음의 크기가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한 주도 이 한마디의 기도를 놓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님, 제가 믿습니다. 그러나 제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십시오."
저는 이 기도가 참 은혜롭습니다. 이 기도에는 믿음도 있고 눈물도 있습니다. 소망도 있고 연약함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바로 이런 기도를 기뻐 받으십니다. 오늘도 우리의 작은 믿음을 귀하게 여기시고 끝까지 붙드시는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실 줄 믿습니다.
그 은혜를 붙들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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